국감 출석 이국종 교수 ‘울분’… 응급헬기 인계점에만 착륙법 비판

방음벽 설치하라는 민원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목소리 호소

"응급헬기가 인계점(환자를 태우거나 내리게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이·착륙을 허가받은 지점)에만 착륙할 수 있다는 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구축돼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24일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은 우리나라 응급헬기 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영국에서 응급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헬기가 민원을 신경 쓰지 않고 주택가 한복판에 바로 랜딩하며 무전도 한다. 그런데 저희는 현장에서 무전도 안 돼서 LTE가 터지는 낮은 고도로 비행할 때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상황이다"고 하소연했다.

이 교수는 최근 허벅지에 중증외상을 입은 해경 승무원이 병원 이송을 위해 헬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허가받은 인계 장소가 아니라는 점 등을 이유로 지원받지 못하고 육상으로 이송하다 숨진 사고와 관련, 현장의 실태를 증언하고자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의 요청으로 국감장에 섰다. 그는 "영국의 경우 럭비 경기중에도 경기를 끊고 응급헬기가 환자를 구조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관공서 잔디밭에 내려앉아도 안 좋은 소리를 한다", "소음 때문에 헬기장을 폐쇄하거나 방음벽을 설치하라는 민원이 들어오는데 이런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민국 모든 병원이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바로 옆 일본만 비교해도 간호사 인력이 저희가 3분의 1이다. 의사는 말조차 않겠다"며 인력난을 호소했다. 덧붙여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이 실행됐는데 그러려면 의료현장에 많은 인력증원이 있어야 한다"며 "인력증원 없이 (근무) 시간을 줄이면 문 닫으라는 것밖에 안 된다. 이런 식이면 한국사회에서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2011년 석해균 선장 피격 사건 이후 17곳을 목표로 설치되기 시작한 권역외상센터는 지역 대형병원에 딸린 형태로 14곳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는 동안 열악한 의료진 처우와 장비 부족, 만성적 적자, 환자 이송 체계 부실 등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외상센터가 늘고 의료진이 분투했는데도 실제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에 별 변화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온 형편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촌각을 다투는 중증 외상환자들에 즉각 대응한다는 당면한 필요뿐만 아니라 지진 등 대규모 재난에 대처하는 의료 거점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최근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북한 귀순 병사를 살려낸 것을 계기로 센터의 열악한 사정이 다시 이목을 끈 게 그래서 다행스럽다. 지난해 예산 심의 때는 복지부가 전년도보다 깎아 편성한 관련 예산안을 국회가 여야 합의로 1.5배나 늘려 통과시키는 보기 드문 일까지 벌어졌다.

박 장관이 밝혔듯 닥터헬기 운용 개선 등으로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수술 가격 현실화와 직접지원 확대 등을 통해 센터당 매년 30억원에 이른다는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 권역외상센터는 센터당 의사 23명이 필요한 데도 그나마 낫다는 곳이 17, 18명 수준이다. 인건비 증액 등 충분한 보상을 통해 이 분야에 발 들여 놓기 꺼리거나 얼마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의료진의 사기도 북돋워야 한다.

더불어 권역외상센터와 응급구조사 간 효율적 소통을 통해 중증외상환자 발생시 우왕좌왕하지 않고 센터로 바로 찾아가는 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외상외과 전문의 양성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최근 이대목동병원 사건에서 보듯 충분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언제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르는 게 의료 현장이다. 권역외상센터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국종 교수는 2011년 초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구조된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면서 인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당시 오만에 급파된 이국종 교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당시 국제 의료지원 기업 인터내셔널SOS사가 운영하는 스위스제 에어 앰뷸런스의 전세비용은 40만달러(약 4억2000만원).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끝낸 이 교수는 자기 돈으로라도 전세기를 빌리겠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에 집권당과 청와대, 외교부, 국정원이 입체 작전을 펼쳤고 불과 반나절 만에 항공이송을 성사시켰다. ‘아덴만의 기적’은 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에어 앰뷸런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해 9월 인천과 목포에 응급의료용 ‘닥터 헬기’를 도입했다. 그나마 의료 장비를 갖추고 의사가 탑승하는 응급구호의 첫 장을 연 셈이다.

미국에서는 40여년 전부터 응급의료헬기가 날아다녔다. 지금은 1000대 이상의 의료헬기가 연간 30만명이 넘는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땅이 넓은데도 환자의 82%가 1시간 안에 외상센터에 도착해 수술을 받는다. 그래서 예방가능한 외상환자의 사망률이 15% 이하다. 항공이송 체계가 미흡한 우리나라 사망률은 35%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국 환자 한 명을 또 에어 앰뷸런스로 송환할 정도로 체계적이다. 일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0대 의사를 송환한 지 사흘 만에 60대 여선교사까지 데려온 것이다. “낯선 공포가 미국의 연대감을 이길 수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동승해 기내 감염방지시설에서 격리 치료하는 등 완벽한 시스템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명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미국 정신의 승리다.

우리에게는 에어 앰뷸런스가 없다. 엄청난 비용을 주고 빌리려 해도 쉽지 않다. 일반 여객기로 환자를 이송하려면 격리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이래저래 위대한 미국이다. 그 앞에서 자꾸만 초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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