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대표변호사

<칼럼 _ 김상배 변호사ㅣ전주,인천지법,부천지원 부장판사>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에 대한 소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은 그 기원이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형사재판에서의 대원칙이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위 원칙을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판사들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 어느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그동안 법원이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유죄의 심증’을 미리 가지고 재판을 진행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글을 법원 내 게시판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부장판사는 ‘법원이 수사기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시민에 대한 근거없는 불신으로 검찰이 정해주는 피고인은 당연히 유죄일 거라는 추정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지는 않았던지, 또 언론이나 여론이 때려되는 피고인을 검찰이 데려오면 그 언론이나 여론에 현혹되거나 두려움으로 검찰의 수사결과 뒤에 숨어서 확인하고 승인해주는데 만족하지 않았는지 되살펴보고,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선고된 뇌물죄 사건을 소개해본다.

피고인은 병원에 의료용품을 납품하는 회사의 대표로, 2007.경부터 모 병원에 의료용품을 납품하면서 담당자인 A와 친밀하게 되어 A가 공무원으로 의제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다른 거래처 병원 담당자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식사도 하고, 경조사비 등을 송금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사무실에 있던 회계자료 등을 가지고 나가 피고인이 소위 김영란법을 위반하여 A에게 금품을 제공하였다고 경찰에 고발하였고, 수사기관은 피고인과 A의 계좌를 샅샅이 조사하여 피고인이 2016. 6.경 A에게 주식매수자금으로 빌려준 1,500만원을 뇌물로 기소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은 2015. 7.경 A의 추천으로 주식을 매수하여 4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얻은 적이 있어, 2016. 6.경 A로부터 주식매수자금으로 1,500만원을 7일만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A의 은행계좌로 1,500만원을 송금해 주었다.

피고인이 운영하던 회사는 월 매출액이 6,000만원정도 되고, 위 병원에 납품하는 용품은 회사 매출액의 10% 정도인 월 500만원정도에 불과하였으며, 피고인이 A에게 1,500만원을 송금한 이후에도 위 병원에 대한 납품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넉넉잡고 7일 뒤에 갚을 테니 주식매수자금으로 1,500만원을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A의 은행계좌로 송금한 1,500만원을 과연 뇌물로 볼 수 있을까? 검사는 그 외에도 계좌에 나타난 송금내역 전부를 뇌물로 기소하였는데, 그 중 5만원, 10만원 등을 송금한 것도 업무와 관련한 뇌물로 볼 수 있을까? 법원은 피고인이 송금한 위 돈들을 모두 뇌물로 판단하였다.

민사재판이 원고와 피고의 주장 사이에서 상대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형사재판은 사안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이념으로 한다.

그런데 요즘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억울함을 밝히기 위하여 증인을 신청하면 법원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피해자와 피해자가 내세웠던 참고인들만 채택을 하고, 피해자측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거나, 피고인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피고인측 증인에 대해서는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채택을 불허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면 결국 재판은 판사가 궁예의 미륵관심법에 의하여 피해자측 진술의 신빙성만을 따지는 재판으로 흘러가고, 이 경우 법원은 위 부장판사의 말과 같이 ‘수사기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시민에 대한 근거없는 불신’에 따라 ‘의심스러운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 아니라 검사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게 된다. 항소심 재판의 경우에도 1심에서 신문한 증인을 다시 부르지 않는다는 관행에 따라 피해자를 다시 신문하지 않은 채 곁가지 증인을 불러봐야 1심에서 신빙성을 인정한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피고인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판사들은 피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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