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식 요청에 文 대통령 ‘조건부 수락’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관계

최대 외교안보 문제 맞닥뜨린 문 대통령 / 전문가들 “북미 양쪽 균형 잘 잡아야”

김여정 부부장, 문재인 대통령,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측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방북 초청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한반도 평화외교에 중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최대 외교안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북측의 파격적인 공식 요청에 문 대통령이 사실상 조건부로 수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반면, 북미 대화와 북한의 비핵화 진전 등 쉽지 않은 선결조건이 남아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일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방문했음을 처음으로 공개한 뒤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만남 보다 성과 중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2년 자신의 통치 체제를 구축한 이래 남한 최고 지도자를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이를 토대로 한반도 정세 대응의 틀을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나가자"고 화답했다. 특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북미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즉각적인 수락이라기 보다, 북한과 미국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야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의 핵심은 북핵 문제의 진전이다. 남북이 큰 틀에서 관계 개선을 이뤄보자는 뜻에는 공감하지만,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을 수 없다는 게 문 대통령의 판단이다.

북미는 대화의 조건과 시기를 놓고 '탐색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미국의 경우 북측 인사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주재했던 평창동계올림픽 사전 리셉션에 불참을 통보해 이날 주빈석에 함께 앉기로 했던 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조우를 피했고, 김 상임위원장을 제외한 주요 정상들과 악수를 나눈 후 5분만에 퇴장했다. 북한 측 역시 대표단의 방남 전 미국 측과의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제시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긍정론을 내놓는가 하면, 일각에선 "김정은이 비핵화를 사전에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고 회의론을 펴기도 했다. 긍정론을 펼친 전문가들은 비핵화 등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정상회담은 만남 보다 성과가 중요하다"며 "정세 변화, 한반도 평화 정착, 북핵 문제 해결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여건을 지금부터 조성해야 한다. 여건 조성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기도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한 전문가도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며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비핵화와 관련한 남북 대화를 통해 성의 있는 조치가 있다면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만큼 양쪽의 균형을 매우 잘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결국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선결조건은 어찌됐든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며 "그게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 입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던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대화가 시작됐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기 때문에 한국은 대북제재에 있어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함께 맞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년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를 향한 과정이자 목표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시작이다.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나아가 북핵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올해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동맹국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관련 국가들을 비롯해 국제사회와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남북간 훈풍의 불씨를 어떻게 살려낼 지 관심이다. 김여정 부부장의 방남은 지난 1월 9일 고위급 회담의 결과물이다. 고위급회담에서는 군사회담을 개최하는데도 합의한 바 있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해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며 “군사적 긴장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하고 해결할 목적으로 군사 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등이 지난 9일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방남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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