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위력 간음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이례적…도망, 증거인멸 우려 없어

28일 밤 늦게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에 대해 법원이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안 전 지사에게 영장을 기각한 사유에 대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자료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안 전 지사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울러 지금 단계에서는 안 전 지사에 대한 신병 구속이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신보호를 위해 가급적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법원의 방침과도 일치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결과적으로 사건의 중대성 못지 않게 법리적으로 혐의를 다툴 여지가 높은 만큼 방어권 보장이 인신 구속보다 더 우선이라고 본 것”이라며 “만약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검찰이 낸 증거자료가 혐의 소명에 충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이 안 전 지사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형법상 피감독자간음죄(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로 남녀 성인 간 성관계를 합의에 의한 ‘애정행위’로 볼 것인지, 또는 폭력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간음인지를 판단하는 게 구속 여부 결정짓는 것이 핵심이었다.

 

피감독자간음죄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 판례에서 위력은 폭행이나 협박과는 달리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인정되며 실질적인 폭행, 협박이 없어도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 지위나 신분이 높아서 위압감을 느꼈다고 하면 인정되는 죄다.

 

따라서 이번 안 전 지사의 구속영장 기각에는 검찰이 안 전 지사의 간음과 위력행사 간에 결정적인 단서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위력이란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으로 대법원 판례에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무형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명시돼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안 전 지사를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일종의 무리수였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흔하게 발생하는 범죄가 아닌데다, 위력에 대한 정의나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만큼 위력 행사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증거가 필요한 강간과 달리 위력행사는 인멸할 만한 물적 증거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재판에 비해 법리 다툼도 치열하다. 위력의 범위는 광범위한 편이지만 위력행사 입증 만큼은 법원에서 깐깐하게 다룬다.

 

위력에 의한 간음 여부는 위력의 내용과 정도, (위력)행위자의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간음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 법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비서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을 당시 안 전 지사는 거대 정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자 충남 지역에서 진보 인사로는 드물게 연임에 성공한 도지사로 이러한 지위와 영향력은 성관계 거부 의사를 밝혔던 비서의 자유의사를 무력화하기에 충분한 ‘세력’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법원이 고심 끝에 영장을 기각한 건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던 데다, 안 전 지사의 지위나 입지에 따른 절대적인 영향력만으로는 위력행사를 통한 간음으로 곧바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법원은 피해 여성이 구체적인 일시, 장소 등 성폭력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했던 점과 안 전 지사가 성관계 후 ‘미안하다. 괘념치 말라’ 등과 같은 글을 남겨 사과한 것도 위력행사의 근거로 볼만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피해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안 전 지사는 김씨를 비서로 채용당시 별도의 채용절차 없이 특채로 기용된 것으로 아려졌다. 김씨는 안 전 지사를 인사권을 가진 ‘고용주’로 간음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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