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문건에 “국민들은 이기적인 존재” 파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출처: 구글 이미지)

[시사경제뉴스=유상철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범위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관련 문건 196개를 추가 공개하면서 새로운 의혹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미공개 문건 196개(중복 문건 제외)에는 재판 거래 근거는 나오지 않지만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 등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도입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 등을 압박한 정황이 드러나 사법 불신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 당시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 사건 가운데 상대적으로 단순한 민형사 사건을 상고법원이 별도로 맡을 경우 보다 신속한 사건 처리 등이 가능하다고 보고 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상고법원 반대’ 대한변협회장 고립

2015년 4월 작성된 ‘대한변협 대응 방안 검토’ 문건에는 상고법원에 반대한 하창우 당시 대한변협 회장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시한 대한변협과의 간담회 개최 중단 등은 실제로 실행됐다. 2014년 9월 작성된 ‘(청와대)법무비서관실과의 회식 관련’ 문건에는 “국민들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언급하며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국민을 비난해 충격을 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상고법원 관련 공청회를 앞둔 2015년 3월 작성한 ‘법사위원 대응 전략’ 문건에는 법사위 의원별 특징과 대응 전략, 지역구 현안을 상세히 정리돼 있다. 상고법원 설치에 유보 또는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카드로 일부 활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거부권 행사 정국의 입법 환경 전망 및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정의당 서기호 당시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야당 내에 서 의원의 의견을 동조하는 세력 확산을 방지해 서 의원을 고립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상고법원 도입 방안을 놓고 국회의 입법 논의가 한창이던 2015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 이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당시 서기호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압박과 유화’ 전략을 번갈아 시도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 면담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행정처 소속 심의관이 당시 여당 최고위원이던 이정현 전 의원을 만나 상고법원 추진을 통해 '사법한류'를 이끌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실제 이 의원이 청와대 관계자에 전화 통화를 시도한 정황이 담겼다.

2014년 9월 행정처 내 '상고법원태스크포스(TF)'에서 작성된 '상고법원안 입법추진(발의) 방안'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에서 관련 법 발의가 필요한 만큼 당시 여당 원내 지도부이던 홍일표 의원 등을 통해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사법농단에도 한국당 침묵

'상고법원 관련 언론지상간담회 시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관련 TF를 구성해 대대적 홍보를 위해 어떤 내용을 간담회에서 언급할 지 여부와 언론사 간담회 시기, 관련 효과 등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유력 매체에 상고법원 홍보를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정황도 문건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당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은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야욕에 휩싸인 그들에게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물론 판관으로서의 정의감이나 공명심,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며 비판했다. 바른미래당도 김철근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사법부의 숙원사업 달성을 위한 문건들이 사법거래와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서울 은평갑‧초선) 의원은 7월30일 사법농단 사건에 관한 공정한 수사 및 재판을 위해 특별영장전담판사를 임명하고, 특별재판부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박주민 의원은 공청회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 따라 사법농단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게 될 경우,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떨치기 (어려워 보인다)”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재판 절차에 관한 특례를 마련해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재판거래는) 정상 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신뢰할 수 없는 재판이었다면 다시 재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법농단 의혹을 재심사유로 규정하고 당사자 소송비용 등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의된 특별법은 크게 ▲사법농단 책임자 처벌 특별법과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 특별법으로 이뤄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수준 충격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8월1일 논평을 통해 “이 문건들이 담고 있는 사법행정권의 남용 수준은 가히 충격적”이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사법농단의 전체 실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이 같은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이 이 문건 이외의 사법농단 관련 자료들을 검찰에 제공하는 등 충실히 진실 규명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국회 역시 특별재판부 입법 및 관련 법관 탄핵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에 공개된 193개 문건의 내용은 법원행정처가 오직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 내에 상고법원이라는 치적을 남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정치인, 언론, 청와대, 변호사단체 등 유관된 공기관들과 민간단체들을 정치적 성향과 계파까지 파악해가며 로비전략을 세운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위헌·위법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은 7월31일 입장문을 내고 “(공개된 미공개 문건에 따르면)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국회의원과 청와대에 접촉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대법원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고 연이어 검찰이 청구한 영장도 기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원 내 반발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사법부가 이번 사법농단 의혹 재판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며 “사법부는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재판부의 판사들은 시민사회로 구성된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임명해야 하고, 특별영장전담법관을 둬 압수수색과 검증, 체포 또는 구속영장에 대한 심사를 전담케 해 야 한다는 게 경실련의 입장이다. 아울러 경실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KTX해고 승무원 복직 판결,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판결,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 등 이른바 재판거래에 의해 무고한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봤다”며 “사법농단 의혹 사건들을 대상으로 피해 당사자들의 재심 청구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위자료 지급 및 국가배상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및 주요 간부, 대법관 등 판사들도 2015년부터 '특수활동비'를 국고에서 받아 사용해온 것으로 참여연대 발표로 드러났다. 특수활동비는 원래 국가정보원의 첩보활동 등 수사기관의 기밀작전을 위한 것이다. 이른바 '눈 먼 돈'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는 국가정보원의 비밀활동비 이외에는 직접적인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위헌여지가 많다고 지적받고 있다.

김선수·이동원·노정희 신임 대법관이 지난 8월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취임식을 열고 임기를 시작했다. 전체 대법관 14명(대법원장 포함)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임명된 대법관이 절반을 넘겼다. 오는 11월에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의 후임자까지 포함하면 문재인 정부 이후 취임 대법관들이 대법원의 주류를 확고히 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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